백두대간사람들 25 소백산- 하늘의 빛을 쫓는 별지기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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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210,419회 작성일 18-08-28 11:45본문
소백산 연화봉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광학반사망원경이 설치된 소백산천문대가 있다.
별 하나에 소원을 빌고 별 둘에 꿈을 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별은 늘 사람들 곁에 있었다. 여름밤이면 할머니는 평생을 이어온 노동으로 앙상해진 무릎을 손자에게 베개로 내주고 기억의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웠다. 할머니가 길어올리는 두레박에는 호랑이를 피하다 별이 된 불쌍한 두 남매의 이야기가 담겨지기도 하고, ‘삼태성’이 점지한 장수감이 영웅이 돼 나타나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는 무용담이 가득하기도 했다. 자식을 점지하던 칠성님도 불로장생을 관장한다던 ‘남두육성’ 이야기도 듣기 어렵게 된지 이미 오래다.
밤하늘 별이 신화를 잉태하지 못하는 건 단순히 도시의 화려한 불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꿈을 잃은 탓일 게다. 돌이켜 보라.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본 것이 언제인가.
그러나 세상 모두가 별을 잊어도 별바라기에 평생을 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백두대간 기나긴 능선에 운기가 가장 잘 생성된다는 소백산 연화봉에서 늘 밤을 준비하고 별을 기다리며 산다. 소백산 능선에 불을 놓는 철쭉이나 한여름 발목까지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도 그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장마철이 낀 6월과 7월은 그들에게는 말 그대로 ‘별 볼일 없는’ 계절이다. “장마철인 6, 7월은 천문대 정비기간이에요. 망원경도 손보고 다음 계절의 망원경 사용일정도 조종하고, 뭐 그렇게 지내죠.” 올해는 78년에 준공된 낡은 건물에서 새 건물로 망원경을 옮기는 바람에 여전히 바쁜 날을 지내는 김승리(35) 박사의 천문대 이야기가 밤의 한복판을 넘기면서도 지치지 않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 오면 별지기들은 서서히 미쳐간다. 단양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그들은 소백산천문대에서 별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전쟁을 준비한다. 무기는 61cm 반사망원경. 20년도 더 된, 이제는 웬만한 대학천문대 망원경보다도 보잘것없는 물건이 돼버렸지만 소백산천문대가 문을 열던 78년만 해도 국내 최초·최대를 자랑하던 것이었다. 최대의 적은 추위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여름철에도 한낮 온도가 섭씨 10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연화봉의 기온은 매섭다. 겨울에는 영하 20도가 보통이다. “망원경이 있는 돔은 난방을 하지 않아요. 외부온도와 실내온도가 차이가 나면 공기 순환이 나빠져 상이 안 좋아지거든요. 별이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정신력과 체력만으로 버텨내야 하는 지독한 겨울도 이제는 추억이다. 올해 망원경은 새 건물로 이사했다. 이사하는 김에 망원경 조작도 원격조정이 가능하도록 개조했다.
별지기라고 해서 별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망원경 제조와 수리에도 참여한다. 김 박사는 자신의 연구분야인 맥동변광성 관측뿐 아니라 컴퓨터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과, 가끔씩 ‘노가다’에도 참여한다. 한국천문연구원 50여명의 연구원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고 싶은 별을 볼 수 있잖아요.” 어느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초과학인 천문학에 대한 투자는 언제나 갈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소백산천문대의 61cm 망원경에 ccd카메라를 이용한 천체영상 시스템을 덧붙이고 자동으로 별을 쫓는 추적장치와 별의 빛을 재는 자동측광장치 등을 달 수 있었던 것도 미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4박5일씩 교대로 근무하도록 돼 있지만 일이 생기면 비번이라도 산을 내려가지 않고 망원경에 매달리는 것이 별지기들에게는 다반사다. 그러면서 설계와 제작능력을 키웠고 지난 96년 완성된 보현산 천문대의 1.8m 반사망원경을 직접 설계할 수 있었다. 보현산천문대 돔의 바람막이는 김 박사가 만든 작품이다. “망원경이란 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커다란 오차를 가져오거든요. 돔의 개구부를 통해 망원경을 흔드는 바람을 막는 장치에요.”
1.8m급 망원경이 있는 보현산천문대가 준공된 뒤 소백산천문대는 최고의 자리를 내주었다. 외부 연구기관과 망원경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도 많이 사라졌다. 소백산천문대가 유일하던 시절 망원경 사용일정은 어느 별지기도 만족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빡빡했다. 그러다 보니 배정받은 날의 날씨가 나빠도 별지기들은 망원경 곁을 떠나지 못했다.
“수시로 일기예보 위성사진을 들여다봅니다. 구름의 이동사진을 보면 날씨를 대충은 알 수 있거든요.” 혹시 잠시 구름이 걷힐지도 모르는 기대감으로 애꿎은 컴퓨터 자판에 몰매를 주던 시절이었다.
신화는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보통 사람들에게 별은 동경의 대상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별을 보고 연구한다는 김 박사의 대답은 늘 하늘을 우러러 사는 것이 습관인 별지기의 겸손이다. 별 보는 일이 쌀이 나오는 것도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열심이냐를 되묻지 말자. 알아듣기 어려운 난해한 단어를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 별지기들이 없으면 해가 몇 시에 뜨고 지는지, 밀물은 언제고 썰물은 언젠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보통사람들에게 시간은 하나뿐이지만 별지기들은 세계시, 원자시, 지구역학시, 세계협정시, 항성시 등을 따진다. 그렇게 해서 세계시와 1초라도 차이가 생기면 즉각 국민들에게 이를 알려 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천문대가 하는 일이다. 별과 별의 미세한 각도를 따지고 빛의 밝기와 색을 따져 거리를 계산하는 것도 별지기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별지기들은 별을 보는 것을 빛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늘의 빛을 보기 위해 그들은 하늘과 조금이라도 가깝고 인간의 빛과는 조금이라도 먼 산꼭대기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천문대 방마다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이중 커튼이 쳐져 있는 것도 인간의 빛이 천상의 빛을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주변에 고속도로나 대도시가 없어야 하고 청정일수가 많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소백산이었고 보현산이었다. 그러나 소백산 아래 단양의 네온은 자꾸 밝아만 간다.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제천-영주간 중부고속도로도 별지기들을 위협한다.
필요한 2.4m급 망원경은 아직 예산도 따내지 못했다. 보현산천문대의 1.8m급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몇 년 뒤면 고갈될 것이다. 그 전에 2.4m급 망원경 설치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은 현재까지는 별지기들의 바람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구를 위협하는 작은 천체들”(NEOs)에 대한 연구에서 지구촌의 한 가족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2.4m급 망원경은 절실하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천문학은 세계적 수준이었다고 한다. 신라의 첨성대는 세계 천문가들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고구려에도 첨성대가 있었고 일본에서 7세기까지 활약한 천문가들은 모두 백제인이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전 부족국가에는 별자리를 헤아려 그 해 농사의 길흉을 점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전통은 고려의 서운관과 조선의 관상감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옛 사람들은 천문대를 모두 왕립으로 두고 귀하게 여겼다. 이제 그 전통을 이어야 한다.
소백산 산자락 죽령에는 새 고속도로를 놓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한국고속도로공사가 새 고속도로를 세우면서 낭비한 돈이 50억원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별지기들이 새 망원경을 갖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그 두 배 가량이라고 한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24-소백산-하늘의-빛을-쫓는-별지기들의-고향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별 하나에 소원을 빌고 별 둘에 꿈을 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별은 늘 사람들 곁에 있었다. 여름밤이면 할머니는 평생을 이어온 노동으로 앙상해진 무릎을 손자에게 베개로 내주고 기억의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웠다. 할머니가 길어올리는 두레박에는 호랑이를 피하다 별이 된 불쌍한 두 남매의 이야기가 담겨지기도 하고, ‘삼태성’이 점지한 장수감이 영웅이 돼 나타나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는 무용담이 가득하기도 했다. 자식을 점지하던 칠성님도 불로장생을 관장한다던 ‘남두육성’ 이야기도 듣기 어렵게 된지 이미 오래다.
밤하늘 별이 신화를 잉태하지 못하는 건 단순히 도시의 화려한 불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꿈을 잃은 탓일 게다. 돌이켜 보라.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본 것이 언제인가.
그러나 세상 모두가 별을 잊어도 별바라기에 평생을 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백두대간 기나긴 능선에 운기가 가장 잘 생성된다는 소백산 연화봉에서 늘 밤을 준비하고 별을 기다리며 산다. 소백산 능선에 불을 놓는 철쭉이나 한여름 발목까지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도 그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장마철이 낀 6월과 7월은 그들에게는 말 그대로 ‘별 볼일 없는’ 계절이다. “장마철인 6, 7월은 천문대 정비기간이에요. 망원경도 손보고 다음 계절의 망원경 사용일정도 조종하고, 뭐 그렇게 지내죠.” 올해는 78년에 준공된 낡은 건물에서 새 건물로 망원경을 옮기는 바람에 여전히 바쁜 날을 지내는 김승리(35) 박사의 천문대 이야기가 밤의 한복판을 넘기면서도 지치지 않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 오면 별지기들은 서서히 미쳐간다. 단양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그들은 소백산천문대에서 별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전쟁을 준비한다. 무기는 61cm 반사망원경. 20년도 더 된, 이제는 웬만한 대학천문대 망원경보다도 보잘것없는 물건이 돼버렸지만 소백산천문대가 문을 열던 78년만 해도 국내 최초·최대를 자랑하던 것이었다. 최대의 적은 추위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여름철에도 한낮 온도가 섭씨 10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연화봉의 기온은 매섭다. 겨울에는 영하 20도가 보통이다. “망원경이 있는 돔은 난방을 하지 않아요. 외부온도와 실내온도가 차이가 나면 공기 순환이 나빠져 상이 안 좋아지거든요. 별이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정신력과 체력만으로 버텨내야 하는 지독한 겨울도 이제는 추억이다. 올해 망원경은 새 건물로 이사했다. 이사하는 김에 망원경 조작도 원격조정이 가능하도록 개조했다.
별지기라고 해서 별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망원경 제조와 수리에도 참여한다. 김 박사는 자신의 연구분야인 맥동변광성 관측뿐 아니라 컴퓨터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과, 가끔씩 ‘노가다’에도 참여한다. 한국천문연구원 50여명의 연구원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고 싶은 별을 볼 수 있잖아요.” 어느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초과학인 천문학에 대한 투자는 언제나 갈증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소백산천문대의 61cm 망원경에 ccd카메라를 이용한 천체영상 시스템을 덧붙이고 자동으로 별을 쫓는 추적장치와 별의 빛을 재는 자동측광장치 등을 달 수 있었던 것도 미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4박5일씩 교대로 근무하도록 돼 있지만 일이 생기면 비번이라도 산을 내려가지 않고 망원경에 매달리는 것이 별지기들에게는 다반사다. 그러면서 설계와 제작능력을 키웠고 지난 96년 완성된 보현산 천문대의 1.8m 반사망원경을 직접 설계할 수 있었다. 보현산천문대 돔의 바람막이는 김 박사가 만든 작품이다. “망원경이란 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커다란 오차를 가져오거든요. 돔의 개구부를 통해 망원경을 흔드는 바람을 막는 장치에요.”
1.8m급 망원경이 있는 보현산천문대가 준공된 뒤 소백산천문대는 최고의 자리를 내주었다. 외부 연구기관과 망원경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도 많이 사라졌다. 소백산천문대가 유일하던 시절 망원경 사용일정은 어느 별지기도 만족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빡빡했다. 그러다 보니 배정받은 날의 날씨가 나빠도 별지기들은 망원경 곁을 떠나지 못했다.
“수시로 일기예보 위성사진을 들여다봅니다. 구름의 이동사진을 보면 날씨를 대충은 알 수 있거든요.” 혹시 잠시 구름이 걷힐지도 모르는 기대감으로 애꿎은 컴퓨터 자판에 몰매를 주던 시절이었다.
신화는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보통 사람들에게 별은 동경의 대상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에 별을 보고 연구한다는 김 박사의 대답은 늘 하늘을 우러러 사는 것이 습관인 별지기의 겸손이다. 별 보는 일이 쌀이 나오는 것도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열심이냐를 되묻지 말자. 알아듣기 어려운 난해한 단어를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 별지기들이 없으면 해가 몇 시에 뜨고 지는지, 밀물은 언제고 썰물은 언젠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보통사람들에게 시간은 하나뿐이지만 별지기들은 세계시, 원자시, 지구역학시, 세계협정시, 항성시 등을 따진다. 그렇게 해서 세계시와 1초라도 차이가 생기면 즉각 국민들에게 이를 알려 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천문대가 하는 일이다. 별과 별의 미세한 각도를 따지고 빛의 밝기와 색을 따져 거리를 계산하는 것도 별지기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별지기들은 별을 보는 것을 빛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늘의 빛을 보기 위해 그들은 하늘과 조금이라도 가깝고 인간의 빛과는 조금이라도 먼 산꼭대기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천문대 방마다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이중 커튼이 쳐져 있는 것도 인간의 빛이 천상의 빛을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주변에 고속도로나 대도시가 없어야 하고 청정일수가 많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소백산이었고 보현산이었다. 그러나 소백산 아래 단양의 네온은 자꾸 밝아만 간다.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제천-영주간 중부고속도로도 별지기들을 위협한다.
필요한 2.4m급 망원경은 아직 예산도 따내지 못했다. 보현산천문대의 1.8m급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몇 년 뒤면 고갈될 것이다. 그 전에 2.4m급 망원경 설치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은 현재까지는 별지기들의 바람일 뿐이다.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구를 위협하는 작은 천체들”(NEOs)에 대한 연구에서 지구촌의 한 가족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2.4m급 망원경은 절실하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천문학은 세계적 수준이었다고 한다. 신라의 첨성대는 세계 천문가들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고구려에도 첨성대가 있었고 일본에서 7세기까지 활약한 천문가들은 모두 백제인이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전 부족국가에는 별자리를 헤아려 그 해 농사의 길흉을 점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전통은 고려의 서운관과 조선의 관상감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옛 사람들은 천문대를 모두 왕립으로 두고 귀하게 여겼다. 이제 그 전통을 이어야 한다.
소백산 산자락 죽령에는 새 고속도로를 놓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한국고속도로공사가 새 고속도로를 세우면서 낭비한 돈이 50억원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별지기들이 새 망원경을 갖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그 두 배 가량이라고 한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24-소백산-하늘의-빛을-쫓는-별지기들의-고향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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